<The Big Bang Theory(빅뱅이론)>

누가 물리학자가 재미없다 그래?
<The Big Bang Theory(빅뱅이론)> | Chuck Lorre, Bill Prady | CBS | 2007 

 

언제나, 인류를 위한 거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언제나, 인류가 만들어온 위대한 지식 체계를 발전시켜온 존귀한 존재들. 언제나, 햇살이 드는 창문에 그림같은 기호를 잔뜩 적어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강의실에 앉아있는 뛰어나지만 천재적이지 않은 학생들에게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언제나 언제나. 대략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조합해 떠오르는 직업은 과학자쯤 된다.
 
천재로 분류되는 이들은 그러나, 또 달리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몇 가지 특징들을 보인다. 다분히 편집증적인 증세가 있어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자신이 정해 둔 질서에 따라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현미경으로 살펴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오류를 지적해 낼 수 있고, 놀랍게도 이에 대한 근거까지 정확하게 제시한다.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조크가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누는 농담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비꼬는 말로 입을 가득 채우지만, 정작 자신을 비꼬는 평범한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심각하게 분석하며 지낸다. 자신들의 행동에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대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괴짜로 본다.
 
플레쉬맨, 스타트랙 등의 만화나 사이언스픽션에 대해서는 오타쿠 기질을 넘어 상세한 계보를 적어내고 전문적인 분석을 해낼 수 있지만, 라디오헤드나 블랙 소시가 누군지, 아니 사람인지 아닌지 전혀 모른다.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 등 가상세계의 게임에는 전문적인 식견을 담아 손쉽게 만랩을 확보하지만, 리얼월드에서 일어나는 풋볼, 야구 등의 리얼게임에는 거의 젬병인데다, 게임 규칙조차 가물가물한 사람들이다.
 
언제나 예쁜 여자들을 숨어서 쳐다보지만 결국 우락부락한 근육질들에게 빼앗겨 버리는 불쌍한 사람들. 어쩌다 고백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 지 구분할 줄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 수학, 물리법칙에 대해서는 무박삼일동안 읊어댈 수 있으면서도 "사랑해" 세 글자를 말하는 데 무박삼년이 걸리는 사람들. "신경화학적인 면과 함께 생물 사회적인 조사를 해보자"는 말이 데이트 신청을 의미하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몇년 전인가 대전에 유명한 이공계 대학의 총장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천재소리를 듣고, 과학공부하는데 빠져있다가 과학고등학교처럼 기숙사 생활을 하고 대학에 와서 기숙사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방학이 되어도 기숙사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해진다며 총장은 학생들을 강제로 학교밖으로 몰아내 세상 경험을 시키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총장은 뭔가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야할만큼 절박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글쎄, 학생들이 기숙사 밖으로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유아때부터 길러진 그 기질이 어디갈까.
 
그들의 밖에 서서 그들을 보면, 분명 이상한 사람들이다. 가벼운 물리학 이슈를 이야기한다면서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어단어(어떤 때는 독일어, 러시아어, 불어, 라틴어 등등)들을 줄줄 나열하고, 발표자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다가 갑자가 참가자들이 일제히 웃는 걸 보면 분명 보통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하는 것 같다. 물론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말로 번역한다해도, 한국 인구의 99%이상은 볼 수는 있겠지만 읽을 수는 없고, 들을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다. 절대로. 어쩌면 그들은 외계어를 사용하고 있거나,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대전의 그 대학의 지하 벙커에는 외계인들의 DNA를 수거해 천재들을 복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다른 인간종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 물리학과 관련된 수백편의 논문 중에서 가장 쉽다는 논문 한가지만 골라 읽어보면 이들 과학자들이 과연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인지 단연코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인간의 언어를 흉내낸' 몇 장의 글이 논문이라고 불리는 걸로 보인다. 두뇌능력으로 볼 때, 진화트리의 상부에 위치한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너무도 다른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 평범하게 진화된 수준의 사람들과 지내기 어렵다. 적어도 이렇게 결론내려야 그들을 앞에 앉아 '평범한' 시선으로 그들을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도 반인반마처럼 인간과의 소통이 가능한 과학자들이 있긴 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상, 그런 사람들은 이중적인 두뇌 구조를 가진 정말로, 뛰어난 Bilingual 천재들이다.
 
그들의 안에서 살아본 사람들, 적어도 천재나 그 근처에 있는 사람과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몇년간 생활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단지 언어 세계가 다르고, 생활방식과 목적들이 (과장하자면) 조금, 아주 조금 다를 뿐이다. 전세계에 걸쳐 깔린 해저케이블을 통과해 인터넷으로 전등을 켰다 끄면서 열광하는 그들은 실제로 그 일에 열광한다. "왜 그런 일을 하느냐, 한 발자국 옮겨서 스위치를 내리면 되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면 "우리가 할 수 있으니까"라고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댄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에게는 그런 이유가 대단히 중요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지나친 해저케이블 중간중간에 그들과 비슷한, 혹은 동류의 사람들이 서로의 스위치를 해킹하면서 즐긴다는 것이다. 이런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걸쳐 있다.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널리 퍼진 소수집단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외로워할 건 아닌 것 같다.
 
<빅뱅이론>은 4명의 과학자와 공학자, 그리고 1명의 배우 지망 웨이트리스가 마주보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겪는 생활을 그린 시트콤이다. 시트콤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자 사회를 다룬다. 배경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Caltech)의 응용물리학과다. 각 과학자는 이론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 우주선을 다루는 공학자, 천문학자다. 이중에 공학자는 MIT 석사를 나왔고, 나머지는 모두 박사다.
 
이론물리학자 셸던 쿠퍼는 이 중에서도 가장 '이론'적인 인물로 편집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천재적인 물리학자로 11살에 대학에 들어가 14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15살에 최연소로 스티븐슨 상을 받은 걸로 나온다. (물론 더 뛰어난 북한 소년 한 명이 그의 기록을 깨뜨리만.)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를 아스페르거 증후근(Asperger syndrome)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고, 작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캐릭터의 이름을 딴 '셸던적인(Sheldony)'이라고 부른다.

과학자, 공학자들의 모습들을 엮은 시트콤은 거의 10초 단위로 웃음을 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평범한' 시청자가 보기에도 재미있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청자가 보면 또 다른 유머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썰렁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과학자 농담, 공대 조크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라면 단언코,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배경을 미 서부의 칼텍으로 설정하면서 은근히 미국 동부의 MIT를 깔보며 자존심을 키우고 있다. 고상한 학문을 하는 사람과 단순한 아이디어로 돈만 밝히는 '공돌이'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MIT출신 공대생 캐릭터는 6개국어를 하고 나사의 작업에 참여하는 뛰어난 유태인 테크니션이지만, 다들 딴 박사학위를 못 딴 키작은 못난이로 서른이 되도록 어머니와 함께 사는 덜떨어진 캐릭터에 매번 여자에게 수작을 걸지만 빈번히 실패한다. 매번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다른 과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정작 제대로된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이 테크니션에게 이론물리학자는 "공학은 물리학의 덜떨어진 동생"이라고 놀리지만 한 마디 반박도 못한다.
 
미국 과학계에서 동부와 서부 과학자들은 종종 여러 매체나 컨퍼런스를 통해 서로를 비꼬며 즐겨왔다. 한국에도 여러 천재들이 있지만 대전과 포항이 다르고, 서울과 부산도 경향이 다른 것과 같다. 물론 미국처럼 내놓고 비꼬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실험물리학자로 등장하는 레너드(Leonard)는 레오나르도를 은유한다. 현실세계와 이론세계의 중간을 살면서 셸던과 다른 사람들과의 매개가 된다. 키가 작고 못생겼지만 결국 여자 주인공 페니와 동거하게 되는 '성공'한 캐릭터다. 그러나 이론물리학자는 레너드를 언제나 하위 직급으로 취급하며 "니가 하는 실험은 네덜란드의 어떤 학자가 했던 것일 뿐", "니가 노벨상을 타는 날은, 내가 날으는 양탄자에 달린 깃털의 항력계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날이 될꺼야"라고 놀려댄다. 그러나 셸던은 그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이 둘은 한 집에서 살 정도 가까운 베스트프랜드지만, 언제나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실제로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들의 속에 있는 관계가 세심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외국인 학자로 등장하는 인도인 천문학자는 미국인들의 관계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는 캐릭터다. 언제나 과학자들 관계에서 밀려나 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여자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겸손하기만했던 그는 유명해지자 다른 친구들에게 안하무인으로 군다. 물론 미국 과학계에 널리 침투해있는 인도 학자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실험실 한 구석에서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조용히 있다가 한 번 유명해지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인도 학자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린 것이다.
 
시트콤은 그러나, 과학자들의 유머만 드러내지는 않는다. 물리학계의 오래된 이론 논쟁, 고리이론과 끈이론 간의 경쟁.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간의 가깝고도 먼 관계들. 과학계 내 권력 문제, 데이터 핸들링 등의 연구윤리 문제, 비인기 과학에 대한 학계의 지원 중단 등의 문제를 풍자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다른 학과 사람들을 만나면 얼어붙어버리는 학자들이 있다면 챙겨볼만하다.

The Big Bang Theory | Created by Chuck Lorre, Bill Prady | Directed by James Burrows (pilot), Mark Cendrowski | CBS | 2007

==이 글은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에 기고된 글입니다.

덧글

  • 아롱이 2010/03/30 13:46 # 답글

    와우! 최곤데요~!
  • tevin 2011/01/02 19:53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빅뱅띠오리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니 더욱 새롭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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